흑자 전환에 기여좀 했으니 꺼드럭댈겸 쓰는 회고, 근데 조금 빡세긴 했다.
1년차의 나는 개발이 재밌었고, 4년차의 나는 흑자를 붙들고 있었다
친구랑 카톡을 하던 중, 친구로부터 회사 생활이 너무 재미없다며 "넌 뭘로 동기부여를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장난삼아 주말에 피자스쿨 페퍼로니 피자에 페퍼로니 추가, 치즈토핑 추가해서 먹으려고 일 한다고 했는데, 지난 3년 7개월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1~2년차에는 그저 코딩과 개발이 재밌어서 개발을 잘하고 싶은 것이 나의 큰 동기였다. 어떻게해야 기술적으로 뛰어난 개발자가 될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3년차에는 팀의 일원으로서 일을 잘하고싶다는 것이 나의 큰 동기였다. 우리 팀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소통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다.
여기까지는 다소 추상적인 동기들이었다.
그리고 2026년, 4년차가 되었을 때에는 창립 이래 늘 적자였던 이 회사의 흑자 전환에 기여하고싶다는 동기로 일을 임했다. 그리고 상반기, 회사는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인생 처음으로 헬스장 을 등록했다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근력 운동이다. 시작은 여자친구와의 새해 목표였는데, 솔직히 나는 하기 싫었다. 10시쯤 출근해서 퇴근하면 밤 11시~12시인 날이 많았으니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나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나름 재밌었고, 건강한 루틴을 갖게 된 느낌이 좋았다. 빨리 퇴근하고 운동을 가기 위해 일에 집중하는 밀도가 올라가기도 했다. 너무 바쁠 때에는 일하다가 짬을 내서 다녀오거나, 아침 운동을 하기도 했다.
개발자는 둘, 고객사는 열 곳이 늘었다
작년 4월부터 우리 회사는 총 4명이 되었고, 개발자는 두명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사마다 맞춤으로 만들어주는 B2B다. SI 성격이 짙지만, 코드베이스를 납품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운영까지 한다(좋은 말로는 AX, DX).
나름 잘 만든 고객사례들 덕분일까, 작년 11월 말부터 고객사 10곳이 추가로 늘었다.
그 시간 속에서 개발자는 여전히 둘이었다. 그럼에도 에이전틱 코딩 도구들과 고객사 앱을 만들기 위한 내부 제품 덕분에 코딩 자체는 병목이 아니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가구사, 특장차, 인테리어… 고객사마다 다른 비즈니스 규칙을 머릿속에 넣는 일이었다. 아무리 대 AI 시대여도, 안드레이 카파시의 말처럼 각 고객사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는 외주할 수 없었다. 나는 이걸 이해부채라고 불렀다. 진짜 말 그대로 뇌에 과부하가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유지보수 CS, QA, 현장 미팅까지 모두 소화하느라 내 커리어 중 역대급으로 일을 많이 한 기간이었다.
머리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만큼은 꺼냈다
머리에 다 담을 수 없다면, 머리 밖에 적어두면 됐다. 이해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많이 했다.
먼저 고객사마다 다른 비즈니스 규칙과 요구사항을 코드 수준에서 데이터 수준으로 이동시켰다. 이 부분은 예전 글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여기서는 접어두겠다.
그다음은 이해부채 자체였다. 흩어져 있던 도메인 지식을 카파시가 제안한 LLM Wiki로 정리했다. 지식을 외장하드처럼 밖에 적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LLM에게 읽게 했다. 내가 한 건 무엇을 어떤 구조로 적어둘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부하를 덜 수 있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이해부채를 다 갚지는 못했다. 새로운 도메인과 비즈니스 규칙을 처음 이해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고, 그건 아직도 어떻게 줄여야 할지 고민 중이 다.
좋은 레퍼런스가 다음 레퍼런스를 불렀다
넷이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달렸다. 하나씩 쌓인 결과물이 레퍼런스가 됐다. 잘 만든 사례를 보고 다음 고객사가 왔다. 그중엔 우리가 목표로하던 대기업 고객사들도 생겼다.
예전 같으면 한 곳 붙이기도 벅찼을 텐데, 이번엔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결과물이 남았다. 아직 미성숙한 시스템이지만, 그 위에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사가 흑자를 냈다. 4년차에 들어선 내가 막연히 품었던 "흑자에 기여하고 싶다"는 동기가 실제 숫자가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 근데 생각만큼 기쁘진 않았다.
도착했지만, 종착점은 아니다
흑자는 냈지만, 사람도, 시스템도 아직 한참 모자라다. 이해부채는 여전히 남아 있고, 시스템은 미성숙하다. 팀에 남아있는 동안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갈 것 같다.
돌아보면 내 관심은 기술에서,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이제는 사업의 성과로 옮겨왔다. 이번 흑자는 그 여정의 종착점이 아니라 첫 도착점에 가깝다.
개발자 가 회사의 비즈니스 확장을 지탱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나름 내 커리어의 큰 성과라 꺼드럭대기 위한 회고를 작성해봤다.
